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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복래의 人香萬里 ㊲무덤에 얽힌 인간사(人間史)의 아이러니
묘지가 들려주는 권력과 사랑, 명예와 집착 역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영웅들도 결국 대지의 품에 안겨 영면에 들었다. 황금빛 묘실에 안치되었든, 황량한 풀섶에 뉘어졌든, 혹은 한 줌 재가 되어 바람결에 흩어졌든 그 끝은 예외 없는 침묵이었다. 하지만 역사는 그 고요한 안식마저 온전히 허락지 않은 사례들로 가득하다. 누군가는 고인의 부(富)를 탐했고, 누군가는 고인의 명성을 빌려 사욕을 채우려 했던 탓에, 영면의 공간은 종종 산 자들의 치열한 욕망이 교차하는 전장(戰場)이 되곤 했다.특히 권력자와 혁명가, 예술인의 묘소는 격동하는 정치적 풍파 속에서 도굴과 훼손으로 평온함을 찾기 어려웠다. 천만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 <파묘>가 '조상의 묘가 후손의 삶을 뒤흔든다'는 설정을 통해 무덤 속 원한과 탐욕을 조명했듯, 역사 속 유명 무덤들 역시 산 자들의 일그러진 욕망을 고스란히 증언하고 있다.아닌게아니라 무덤을 둘러싼 역사의 미스터리는 때로 영화보다 더 극적이며 우리의 호기심을 강렬하게 자극한다. 헬레니즘 시대를 열었던 알렉산더 대왕의 묘소는 그가 남긴 광활한 정복의 서사만큼이나 깊은 베일에 싸여 있다. 숱한 훼손의 위기 속에서 끝내 자취를 감춘 그의 안식처는, 오늘날까지도 고고학계 최대의 미스터리로 남아 인류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이집트 투탕카멘의 무덤은 '파라오의 저주'라는 서늘한 경고를 통해 죽은 자의 권위를 산 자의 세계에 관철시키려 했다. 또한 불로초를 찾으며 영생을 꿈꾼 중국 진시황이 지하에 구축한 수은의 강과 자동 석궁은 사후에도 영원히 군림하고자 했던 집착의 결정체였다.결국 무덤은 단순한 매장지가 아니라, 고인의 신념을 지키려는 의지와 그 명성을 소유하려는 산 자들의 욕망이 격렬하게 충돌하며 빚어낸 상징적 표상이다. 유명을 달리한 뒤에도 세상의 탐욕으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쳐야 했던 망자(亡者)들의 사례는 우리에게 '진정으로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깊이 성찰하게 한다.찰리 채플린, 젊은 부인의 지극한 사랑 ‘콘크리트 무덤’ 슬픔을 웃음으로 승화시킨 영화계 거장 채플린은 런던 빈민가의 굶주림을 딛고 할리우드에서 무성영화 시대를 주도했지만, 그의 삶 뒤편엔 냉전(冷戰)의 그늘이 짙게 배어 있다. 정치적 풍자와 비판으로 인해 FBI의 감시를 받았고, 1952년에는 입국 거부를 당해 사실상 미국에서 추방됐다.결국 채플린은 스위스 코르시에에 정착, 망명객처럼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그에게 세상은 사후의 평온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몸값을 노린 도굴꾼들이 1978년 그의 관을 파내 협상을 시도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시신은 약 11주 만에 인근 옥수수밭에서 되찾았으나, 아내 우나 채플린의 슬픔은 예상치 못한 결단으로 이어졌다. 평생 이념의 굴레와 고독에 시달린 남편이 죽어서까지 고통당하는 것을 볼 수 없었던 그녀는, 무덤 전체를 아예 두꺼운 콘크리트로 봉인했다. 다시는 그 누구도 남편의 몸에 손대지 못하게 하겠다는 절박한 ‘사랑의 요새’였던 셈이다.36년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결혼해 34년 동안 여덟 자녀를 낳고 채플린의 곁을 지킨 네 번째 아내 우나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변치 않는 사랑으로 '사랑의 숭고함'이 무엇인지를 몸소 증명해 보였다.에이브러햄 링컨, 국가의 심장을 지킨 ‘명예의 요새’ 분열의 시대를 사랑과 원칙으로 봉합한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의 무덤 역시 범죄자들의 표적이었다. 1876년 위조지폐범들이 그의 시신을 탈취해 동료의 석방과 현금을 요구하려 했던 사건은 미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다행히 비밀요원들에 의해 미수에 그쳤으나, 이 사건은 고인의 명예가 얼마나 취약하게 노출되어 있는지를 보여주었다.이에 아들 로버트 링컨은 아버지의 안식을 위해 최후의 수단을 동원했다. 1901년 최종 재안장 당시, 관을 지하 3m 깊이로 내린 뒤 그 위를 수 톤의 혼합 콘크리트와 튼튼한 철골 빔으로 완전히 덮어버린 것이다.채플린의 무덤이 아내의 지극한 사적 사랑을 상징한다면, 링컨의 무덤은 국가의 정체성과 거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공적인 의지의 보루였다.에바 페론, 20년간의 기구한 ‘시신 망명’ 아르헨티나의 ‘영적 지도자’ 에바 페론(에비타)의 사후(死後)는 그 어떤 영화보다 비극적이었다. 33세의 나이로 요절한 그녀의 시신은 방부 처리되어 대중에게 공개되었으나, 1955년 반(反)페론 쿠데타가 발발하며 군부에 의해 탈취당했다. 그녀가 민중의 성자로 추앙받으며 저항의 상징이 될 것을 두려워한 군부는 시신을 탈취해 이름까지 바꾼 뒤 이탈리아로 밀반출했다.그녀는 밀라노의 한 묘지에 '마리아 마기(Maria Maggi)'라는 가명으로 매장된 채, 20년 가까이 ‘유령 망명객’ 신세가 되었다. 1971년이 돼서야 남편 후안 페론에게 반환된 시신은 1974년 마침내 조국 아르헨티나의 땅을 다시 밟을 수 있었다.현재 그녀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레콜레타 묘지의 가족 묘역에 안치돼 있다. 그러나 그 안식처는 도굴과 탈취 방지를 위해 지하 5m 깊이에 강철판과 두꺼운 콘크리트로 층층이 봉인돼 있다. 이는 고인을 잊지 못하는 대중의 뜨거운 열망과 그녀를 지우려 했던 권력의 서슬 퍼런 증오가 맞부딪쳐 만들어낸, 세상에서 가장 서글픈 방어선이다.엘비스 프레슬리, 공동묘지에서 자택으로 이장 1977년 ‘로큰롤의 제왕’ 프레슬리가 사망한 직후에도 그를 평화롭게 두지 않는 괴한들이 있었다. 장례 후 불과 몇 주 만에 시신을 훔쳐 몸값을 요구하려던 일당이 체포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안장되었던 공동묘지는 대중에게 개방된 곳이라 애초부터 철저한 관리가 불가능했다. 이 사건으로 유족들은 고인이 영원히 안식하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에 휩싸였다.결국 아버지 버논 프레슬리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 묘소를 자택인 ‘그레이스랜드(Graceland)’ 내 명상의 정원으로 이장키로 결정했다. 현재 엘비스와 그의 가족들이 함께 잠든 이 묘역은 외부 위협으로부터 차단된 가장 안전한 안식처가 되었으며, 팬들에게는 그가 남긴 음악적 유산을 조용히 추모하는 성지가 되었다.죽은 자의 침묵, 산 자의 욕망 채플린의 말처럼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나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무덤 또한 그러하다. 멀리서는 평온한 안식처로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곳은 산 자들의 치열한 욕망이 뒤엉킨 거울일 뿐이다.채플린과 링컨의 안식을 짓누른 차가운 콘크리트, 에바 페론의 시신을 가둔 비정한 강철판, 그리고 프레슬리를 자택으로 불러들인 유족의 공포는 죽음조차 자유롭지 못한 인간사의 비극을 증언한다. 탐욕과 증오가 고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마저 집어삼킬 때, 무덤은 더 이상의 안식처가 아닌 방어를 위한 요새가 되어야 했다.우리가 무덤의 견고한 벽 너머에서 읽어내야 할 것은 폐쇄된 암흑이 아니라, 그 속에서 고요히 숨 쉬는 사랑과 명예, 그리고 고단한 삶이 길어 올린 숭고한 진실이다. (끝)출처 : 맑은뉴스(https://www.ccn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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